- 1945년 해방 때 40만 평양시에 2백64개 교회가 있었다.
북한은 해방 다음해인 1946년 평양시를 평양특별시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경기도에 있던 연천군과 함경남도의 원산시, 문천군, 안변군을 분립하여 강원도를 신설하고 1949년에는 강계시, 만포시, 희천시 등 3개시와 장강군외 15군을 합하여 자강도를 설립했다.
북한은 1952년 12월12일 대대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했다. 4단계(도. 군. 면. 리)로 되어 있던 행정단위를 면을 없애고 3단계(도. 군. 리)로 개편했다. 98개 군이던 것을 1백68개 군으로 증설하고, 1만1백20개 리를 3천6백58개로 축소하고 통폐합했다.
평양특별시는 순안, 룡성, 형제산, 대성, 삼석, 만경대, 대성, 사동, 락랑, 력포, 승호, 강동군, 상원군, 중화군, 강남군으로 행정구역의 이름이 명시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평양특별시는 1945년 해방될 당시 인구가 40만명 이었으며, 교회는 2백64개가 세워져 있었다. 평양을 지역별로 세분화 하여 세워진 교회는 다음과 같이 살펴 볼 수 있다. 평양 중심부에 있던 중구역은 예전의 평양 이라고 할 수 있다. 평양은 18개 구역과 4개군이 있는데, 그 가운데 예전 평양이었던 곳은 중구역, 평천구역, 보통강구역, 모란봉구역, 선교구역, 동대원구역, 대동강구역이고 나머지 평안남도 강동군, 대동군, 평원군을 흡수하였다.
평양 옛모습
평양 특별시 첫 번째 행정구역인 중구역을 살펴보면 27개 교회가 세워졌었다. 교단별로는 장로교 14개 교회, 감리교 10개 교회, 성결교, 구세군, 일본 조합교회가 각각 1개 교회다.
먼저, 장로교회를 살펴보자. 평양 선교는 마펫(S. A. Moffett)과 리(G. Hee, 이길함) 두 선교사가 선교지역을 답사하여 교회를 설립하였다. 미 북장로교 평양선교부를 1891년에 설치 하였고, 본격적인 전도와 선교를 하여 많은 교회를 세웠다.
평양의 장로교회의 모 교회는 장대현 교회이다. 장대현 교회는 1894년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한 주막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가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 다음 널다리골로 이전해서 널다리교회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편 평양에서 제일먼저 세워진 교회라고 하여 평양제일교회라고 했고, 평양시 중심에 있다하여 평양 중앙교회라고 부르기도 했다. 장대현교회라고 이름을 바꾼 것은 1903년이다. 장대현교회의 현재 위치는 평양 지하철 승리역과 학생소년 궁전 사이인 것으로 짐작된다.
장대현교회는 1903년에 평양 제2교회라고 부르는 남문밖교회를 분립하여 세웠다. 스왈론(W. L. Swallen), 블레어(W. W. Blair, 방위량) 선교사에 의해서 분립이 이뤄졌다. 스왈론 선교사는 찬송가 493장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를 작사, 작곡해 조선인들에게 천국을 사모하게 했다. 방위량 선교사는 영락교회 고 한경직 목사에게 세례를 베푼 선교사이다. 한국인 목사로는 최초로 길선주 목사가 1907년 9월17일 독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9일부터 장대현 교회 시무 목사로 사역했다. 그리고 이어서 주공삼, 황준국, 이학봉 목사가 시무했다. 주공삼 목사는 평양신학 3기생이며 일본과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약했다. 주공삼 목사 아들이 박정희 정권시 상공부장관 이었던 주요한 박사이다. 황준국 목사는 평양신학교 6기생이며 1913년에 졸업하고 장대현교회에서 시무했다.
이학봉 목사는 평양신학 17기생으로 1924년에 졸업하고 장대재 교회에서 시무했다. 6.25 직전 평양 남부교회에서 시무하다가 6.24일 공산당에게 체포되어 순교했다. 남문밖교회는 1911년 연화동 교회를 분립하여 세웠다. 필립스 선교사와 한국인 목사 황준국, 주공삼, 김우석, 최지하 목사가 시무했다. 평양에 세워진 세번째 교회는 창동교회이다. 창동교회는 1905년 장대현교회로부터 분립됐고, 평양시 창천리에 세워졌다. 창동교회가 있었던 곳은 지금 평양 지하철 통일역과 혁명박물관 사이이다.
창동교회는 1906년 능라리교회(평양시 능라리)를 개척했다. 평양 제4교회라 불리기도한 산정현 교회는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하면서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순교하였다. 산정현교회는 1905년 장대현교회에서 분립했다. 행정구역은 평양시 계리에 위치했다. 산정현 교회가 있었던 곳은 지금의 승리역과 평양 제일 백화점이 있는 지역이다.
예전 평양 신양리(지금 만수대 거리 남쪽) 러시아 대사관이 있는 부근에는 1913년에 신엄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1934년에는 평양시 신양리에 신현교회가 세워졌고 이유택 목사가 시무했다. 이유택 목사는 6.25때 공산당에 의해서 순교했다. 평양시 상수리에는 상수리교회가 세워졌다. 하수구리에는 하수구리 교회와 서문밖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평양시 서성리에 창광산교회가 세워졌다.
황기식 목사 (총회역사전문위원, 아산동산교회)
출처 : 가스펠투데이(http://www.gospel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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